이흥선 (alexander Lee) (1924~2011) 대한민국 최초의 마술사
글쓴이 : 매직 날짜 : 14-03-26 17:10 조회 : 1103 트랙백 주소
이흥선 할아버님은 청년시절 마술사가 되기 전 그는 주위에서 알아주는 근육질의 운동선수였다. 서울 용산에서 출생, 어릴 적부터 철봉에 매달리는 게 좋았고, 열일곱살 무렵엔 아예 밤새도록 동네 철봉에 매달려 땀을 쏟을 만큼 특히 기계체조엔 남다른 애착과 소질이 있었다.

철봉체조, 물구나무서기, 텀블링 등이 그의 주특기였으며 곧 그를 눈여겨 본 신광서커스단으로부터 제의를 받아 할아버님은 일찍 이 유랑생활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.

 나중엔 스스로 차력까지 배워 특기를 보강하셨으며, 전국의 가설극장을 돌며 3년에 한 번 집에 들어갈까 말까한 거친 떠돌이생활이었지만, 젊은 혈기에 몸 고달픈 줄도 몰랐고, 일 자체도 즐겁기만 하셨다고 합니다. 그러다 마술을 접하게 된 것이 26세 무렵.
"서커스단 일로 알고 지내던 대만 마술사 ‘미스터 엑스’가 어느 날 급하게 전화를 했어요."
"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누가 돈을 훔쳐가 갑자기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는 거예요."
"그를 곧바로 우리 집에 데려와 밥도 먹이고 재우면서 제가 다니던 가설극장에 소개해 일거리도 주선해줬더니 " "어느 날인가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게 너무 고맙다며 마술을 가르쳐 주겠다는 거예요."
"차력이나 체조는 나이 들면 못한다, 차라리 마술을 배워두면 늙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였죠."
"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자기가 직접 가르쳐주겠다고 말이죠". "그렇게 해서 마술을 알게 됐는데,"
"그 사람 말이 정말 옳았어요. 지금도 그의 생각을 많이 하죠. 어떻게 보면 그가 오히려 제 은인이나 다름없습니다.”

약 2년 동안 훈련을 받으셨으며 비둘기 마술도 미스터 엑스로부터 배운 것 이라고 합니다.
그 후 처음으로 나선 첫 마술공연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합니다. 당시 레퍼토리는 깡통에서 담배 꺼내기와 종이를 찢은 것으로 국수를 만드는 것으로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.
(나~ 이거 어릴 적 정말 신기했는데...)
차력사로 받은 박수와는 또 달랐다. 그 우레와 같은 환호 속에 빠져 그는 본격적인 마술사의 길로 나서기로 완전히 마음을 굳히셨다고 합니다.

이흥선 할아버님의 또 다른 이름은 "알렉산더 리"다. 한때 야간업소 공연 때 친해진 "가수 고 김정구씨"가 붙여준 예명이다. 그는 실제로 국내마술사에 관한한 국사책 속의 알렉산더만큼이나 역사적 인 인물이다.
프로마술사 1세대의 원로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다른 국내마술사들이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고난도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. 대표적인 것이 비둘기 마술과 일명 "일루전 마술"분야. 빈손에서 비둘기를 10여 마리나 끊임없이 나오게 한다거나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도록 일정한 도구 속에 사람을 들어가게 한 후 부분절단, 그리고 상처 하나 없이 말짱하게 걸어 나오게 만드는 등의 대담성과 특수도구를 필요로 하는 마술 은 그가 거의 독점적인 노하우를 자랑하는 특기다.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해 현재 그의 손에서 빚어지는 마술만 크게 잡아 2,000여 가지, 자잘하게 응용한 것들까지 합치면 만 가지를 넘기는 것도 어렵지 않다.
특히 그는 마술도구를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으로도 두드러진다. 그동안 제작한 도구만 그의 집 창고 두 칸을 가득 채웠다.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쇼프로그램에 빌려주기까지 한, 사람 자르는 대형 마술도구도 그가 직접 설계도까지 그려가며 목공소에 부탁해 만든 것이다. 못 하나, 문짝 틈 하나만 잘못돼도 폐품이나 다름없는 것이 마술도구이므로 여간 정교하고 공이 많이 드는 작업이 아니다. 얼핏 봐선 별 어려울 것도 없는 사각 통 하나를 만드는데도 사흘이나 걸렸다.
그때 목수들이 툴툴거린 소리. "이거 하나 만드는 시간에 문짝 몇 십 개는 짰겠네.”
사실 직접 만들려면 못 만들 것도 없는 이씨다. 원래부터 고치고 만드는 덴 손재주가 타고난 그다.
옛날부터 그의 집안엔 새로 산 것이 별로 없다. 단골로 드나드는 곳이 고물상. 거기서 구한 고장 난 라디오며 선풍기, 난로 등을 뚝딱 고친 뒤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말짱하게 쓰는 것들 이 많다.
언젠가는 5,000원을 주고 산한 음악재생기계를 말끔하게 고쳐 5만원을 받고 청계천상가에 되팔아본 일도 있다. 가히 "요술손"이다. 요즘도 시간만 나면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며 하루 종일 고물상 을 뒤지는 게 이씨의 주요 일과 중 하나. 그 화려한 무대의 마술도구나 재료도 고물상 출신이 대부분이다.
“마술 기구를 만드는 데는 뭐든 못 쓰는 게 없어요. 중요한 건 재료가 아니라 창의력이지요. 사실 창의력이나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데도 마술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.

마술을 하다보면 자연히 순발력이나 머리회전이 빨라지고, 계속 머릿속으로 뭔가 궁리를 하게 되면서 늘 두뇌운동이 되거든요.” 특히 마술도구를 만드는데 나가는 돈이 적지 않지요. "돈보다 중요한건 어쨌든 일입니다. 저를 보시는 분들은 종종 그런 말을 하시죠.".
"제가 무대에 나오면 벌써 제 얼굴에 "나는 프로마술사다"라고 적혀있는 게 보인다구요."
"사실, 야간업소에서 공연할 때에도 간혹 술 취하신 분들이 공연히 시비를 건다거나 가끔 곤란을 당할 때 가 있습니다."
"하지만 그 어떤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공손하면서도 확실하게 관객들을 휘어잡는 힘이 제 나름대로 있거든요."

"마술만 잘하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. 사람들의 마음도 잘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합니다.”
- 출처 : "비숍의 마술이야기"